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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TALK

C U L T U R E   T A L K



딜쿠샤(기쁜 마음)가 주는 기쁨의 회복 


 


 신승환







September · October 2025 vol.113
ISSUE & CULTURE


 C U L T U R E

T A L K


딜쿠샤(기쁜 마음)가 주는 

기쁨의 회복 


글  신승환



오늘은 셋째 아이와 서울의 꽤 오래된 이층 벽돌집에 방문했다. 100년 전에 지어졌으니, 현대 가옥 중 가장 오래된 집이라 할 수 있다. “딜쿠샤(Dilkusha)”라 명명했는데, 처음엔 사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페르시아어이고, 그 뜻을 접하곤 생각하지 않고 바로 그 집으로 향했다. “기쁜 마음”, “Heart’s Delight”라 한다. 그 의미를 듣는 순간 멈칫했다. 너무 기뻐서였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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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나라를 가리켜 “기쁨을 잃은 나라”라 한다. 그래서인지 나 스스로 “기쁨”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터라 “딜쿠샤”가 “기쁜 마음”이라 했을 때 놀라움과 고마움이 교차했었다. 


딜쿠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아마 더 놀랄지도 모른다. 앨버트 테일러는 광산사업을 하는 부친을 따라 22세인 1897년 처음 조선 땅에 오게 되었다. 이후 35세였던 1910년부터 서울에 거주했으며, 당시 해외 사업을 하던 부친과 전 세계의 견문을 넓힌 앨버트 테일러는 일본에서 연극배우인 아내를 만났다. 1917년 인도에서 테일러와 결혼을 하고, 그때 인상 깊었던 러크나우 딜쿠샤 궁전에서 영감을 받았는지 한국에서 1923년 딜쿠샤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딜쿠샤를 테일러와 함께 건축했다.


딜쿠샤를 건축하기 전 1919년 2월 28일에 아들 브루스 테일러를 세브란스병원에서 출산한다. 이때 병원의 간호사인 누군가가 아내인 메리 테일러의 침대에 33인의 독립선언서를 넣어 두었다. 이를 발견한 메리는 남편 앨버트에게 전했고 그는 AP통신을 통해 미국에 대한민국의 독립선언서를 공개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앨버트 테일러는 대한민국에 큰 기쁨을 선사한 정말 고마운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앨버트 테일러는 한국에 있는 동안 어떤 생각과 목적이었을까? 사업과 자본의 획득을 목적으로 한 그는 어떤 삶의 목적과 가치로 죽음을 무릅쓰고 조선의 기쁨을 구했을까?

일본에게 앨버트 테일러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고, 1919년부터 기미독립선언서 및 일본의 제암리학살사건의 야만적 만행을 해외에 알리고, 항일 독립운동을 물심양면 도왔다. 이후 1940년의 어느 날, 아들 브루스는 미군 입대를 위해 딜쿠샤를 떠났고, 1941년 미국과 일본 제국 사이에 태평양 전쟁이 터지면서 앨버트는 적국의 국민으로 바로 수감되었고, 메리는 딜쿠샤에 가택연금 되었다. 5개월 남짓 수감생활 후 1942년 일제는 다시 외국인 추방령을 내렸고, 테일러 부부는 급하게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1948년 가을,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던 메리 테일러는 “태평양 너머에 내 나라 한국이 있고, 그곳에 내 집이 있다”고 늘 말하던 앨버트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자, 늘 한국 땅에 묻어 달라고 부탁한 남편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성공회 헌트 신부님과 언더우드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미 군함을 타고 대한민국으로 들어와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앨버트를 묻고 딜쿠샤를 방문했다는 것이 테일러 일가의 숨겨진 이야기이다. 


그들에게 한국이 주는 기쁨은 무엇이었을까? 한국은 테일러가 떠난 이후 기적같이 일어나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테일러가 뿌린 기쁨이 한국의 기적이 되었다. 그리고 그 기적을 뒤로 한 채 지금의 대한민국은 기쁨을 잃었다. 


우리에게 어떤 기쁜 마음이 회복되어야 할까? 모르긴 몰라도 “딜쿠샤”를 통해 우리 대한민국은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고, 무엇인지 몰라보게 된 잃어버린 기쁨을 이제 다시 찾고, “딜쿠샤”처럼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또 다른 이들에게 그 기쁨을 전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에게 기쁨을 회복하는 주어진 숙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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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셋째 아이와 서울의 꽤 오래된 이층 벽돌집에 방문했다. 100년 전에 지어졌으니, 현대 가옥 중 가장 오래된 집이라 할 수 있다. “딜쿠샤(Dilkusha)”라 명명했는데, 처음엔 사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페르시아어이고, 그 뜻을 접하곤 생각하지 않고 바로 그 집으로 향했다. “기쁜 마음”, “Heart’s Delight”라 한다. 그 의미를 듣는 순간 멈칫했다. 너무 기뻐서였을 거다.


누구에게나 절망의 순간이 있다. 변하지 않는 현실, 그 무엇도 되지 않는 상황, 어떤 계획도, 판단도, 생각도 다 무너지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마주할 때가 존재한다. 지금의 청년세대를 ‘포기하는 세대’라 한다. 취업도, 결혼도, 출산도 모두 포기를 넘어 그저 외면해 버린 절망의 세대라 한다. 이러한 어려움은 기성세대도 예외가 아니다. 과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길어진 고령사회에서, ‘유병장수’하는 부모 봉양과 자녀 양육의 이중고를 지속 경험하는 세대이며, 세대 간 갈등의 심화로 불안이 일상이 된 슬픈 대한민국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인류에게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은 죽음이다. 인류는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고, 죽음의 두려움 앞에 결국 마주한다. 언젠가 마주할 두려움이지만 일상적 삶을 최선을 다해 영위해 나가는 것이 그 극복의 첫걸음이자 자연의 이치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지혜의 첫걸음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떤 삶을 사는 것보다 무엇을 할지 생각해 보는 것이 더 지혜로울 수 있다. 자연의 섭리를 따라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그 생활을 루틴화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운동장을 뛰고 나면, 가슴이 뛰는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24시간의 자연 섭리에 정확히 반응하여 일찍 일어나고, 규칙적인 식사를 하고, 규칙적인 취침을 시작해 보는 것이다. 



신체를 단련하고 마음을 수양하는 것은 체력을 증진하기도 하지만, 과학적으로 신경을 자극하여 반응하게 한다. 이는 뇌를 자극하여 신경호르몬의 작용을 활성화하게 되는데,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는 신경전달물질(세로토닌,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와 다른 일상을 알리는 중요한 문을 여는 시작이다. 규칙적인 일상을 살아내는 것, ‘지루한’ 일상의 프레임을 만들어 내는 루틴에서, 나는 오늘 우리 현대 사회, 현대인의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의 열쇠를 찾았다. 


규칙은 반복적인 것이며, 지루한 과정의 연속과 같은 말이다. 자연법칙이라는 것이며, 이는 예측 가능한 과학이라는 말과 연결된다. 두려움과 불안은 예측 불가능한 것이지만, 우리의 일상을 규칙적으로 살아내는 것이 이를 극복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시작이 반이다.


 Try, Just Do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