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올 리 스 트
글 · 인터뷰 newlooks
사진 제공 프레스토컴퍼니(PRESTO), SangWookLee
유사한 악기라고는 하지만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그 역할과 소리가 분명히 다르다. 전문 연주자가 성인이 된 이후 악기를 바꾼다는 것은 연주의 기술뿐 아니라, 자신만의 음악적 정체성까지 새롭게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나 비올리스트 김세준은 자신과 더욱 닮은 악기인 비올라를 선택해 새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다.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비올라 종신수석을 지내고 있는 그는, 여전히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열정적인 음악가로 만드는 것일까?
비 올 리 스 트
글 · 인터뷰 newlooks
사진 제공 프레스토컴퍼니(PRESTO), SangWookLee
유사한 악기라고는 하지만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그 역할과 소리가 분명히 다르다. 전문 연주자가 성인이 된 이후 악기를 바꾼다는 것은 연주의 기술뿐 아니라, 자신만의 음악적 정체성까지 새롭게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러나 비올리스트 김세준은 자신과 더욱 닮은 악기인 비올라를 선택해 새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다.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비올라 종신수석을 지내고 있는 그는, 여전히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열정적인 음악가로 만드는 것일까?
Q.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케스트라 협연, 실내악, 독주회 등 국내외 많은 공연을 통해 비올라의 매력을 선사하고 계십니다. <누룩> 독자분들께 인사와 함께 근황을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오는 4월 대구콘서트하우스 『The Masters-김세준 비올라 리사이틀』로 찾아뵙게 될 비올리스트 김세준입니다. 반갑습니다!
Q. 어린 시절 처음 음악을 접하게 된 계기나 특별한 동기가 있었나요?
저희 부모님은 두 분 다 음악 전공자는 아니시지만, 어머니께서 대학교 관현악 동아리에서 클래식 음악을 접하신 경험이 있으셨어요. 그래서 아이들을 키울 때 취미로라도 음악을 배우게 하고 싶으셨다고 해요. 그렇게 누나와 제가 어렸을 때 동네 음악학원에 다녔는데, 제가 바이올린을 너무 좋아해서 오히려 부모님이 당황하셨다고 하십니다(웃음). 선생님께서 내준 숙제 이상으로 혼자 진도를 나가며 연습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전공을 시켜야겠다고 결심하셨다고 합니다.
Q. 대학원 시절 비올라로 전향하셨는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전향을 결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졸업한 한국예술종합학교에는 솔로뿐만 아니라 실내악 관련 커리큘럼도 많이 있습니다. 어느 날 실내악 리허설 쉬는 시간에 비올라 전공 선배와 서로 악기를 바꿔 연주를 해보게 됐어요. 그 순간 비올라가 가진 매력에 매료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계속 전향을 고민하던 중 우연한 기회가 찾아와 비올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 성향과 비올라는 참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제가 추구하는 소리도 비올라에 더욱 잘 어울렸고요. 당시 주변 선후배들도 “세준이는 비올라를 하면 정말 잘할 것 같아”라고 격려해 준 덕분에 용기를 내어 전향할 수 있었습니다.
Q. 독일에서 오래 유학하시고, 현재는 겸임교수로 출강도 하고 계시죠. 독일에 가기 전과 후를 비교한다면 무엇이 가장 달라졌나요?
2010년에 독일에 처음 왔으니 벌써 15년이 되었네요. 유학 전에는 부모님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음악에 전념했다면, 독일에서는 모든 행동에 책임이 따르고, 모든 것들이 쌓여 ‘저’라는 사람을 만든다고 느꼈습니다. 조금씩 더 생각하고 행동하며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음악을 단순히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이젠 제 인생이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클래식 음악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독일에서 직접 부딪히고 배우다 보니, 어느 순간 음악적으로 더 깊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이런 변화 덕에 그저 ‘잘’ 하거나 ‘좋은’ 소리를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인생의 경험을 토대로 작곡가의 의도나 감정 등을 대입하고 표현하려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2013~2019년 현악사중주단 ‘아벨 콰르텟’의 창단 멤버로 활동하셨죠. 그룹 활동으로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많이 거두셨는데, 팀원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운이 좋게도 결성 직후 팀으로서 뮌헨 국립음대에서 함께 공부할 기회를 얻었고, 레슨을 함께 받으며 서로의 음악에 대해 많이 배우고 공유했습니다. 같은 경험을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호흡도 점점 맞아갔던 것 같아요. 매 순간 인지하고 있진 않지만, 어느 순간 리허설이나 연주 중에, 또는 녹음한 음원을 듣다 보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소리나 음악이 서로 많이 비슷해졌구나!’하는 느낌을 많이 받곤 했습니다. 그렇게 공감대를 형성해 가며 팀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Q. 현재 발트 앙상블의 비올라 수석이자 부 음악감독을 담당하고 계시는데, 감독자의 시선에서 보는 앙상블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앙상블의 음악감독이신 이지혜 교수님을 도우며 많은 의견을 제시하고 공유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연주 곡목과 그 프로그램에 담긴 테마와 메시지 등을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휘자가 없는 단체이다 보니, 첫 리허설 전부터 연주 곡목을 많이 공부하고 준비하면서 다양한 아이디어 등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감독님과 저는 잘 맞는 부분도 많고, 서로의 음악을 참 좋아합니다(웃음). 감독님은 감각이 뛰어난 음악가이기에 저는 그걸 채워줄 수 있는 이론적인 근거 등을 찾는 것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원하는 음악이 같아도 많은 이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하나의 소리로 표현해야 하기에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며 음악을 공유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연주 난도가 높아 기억에 남는 곡이 있나요?
너무 많은데요(웃음). 이번 독주회 마지막 곡으로 연주할 쇼스타코비치 소나타가 비올라 레퍼토리 중 가장 깊이 있는 곡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깊이를 이해하고 노력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이 곡은 작곡가의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69세의 쇼스타코비치가 느꼈을 감정을 이해하려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또 하나 떠오르는 곡은 브람스의 비올라 소나타 1번입니다. 이 곡은 정말 많이 연주되는 곡인 만큼 개인적으로도 많이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표현적으로 비교적 명확한 요구사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표현되지 않아 어려움을 느꼈던 곡입니다.
Q. 2019년에 북독일 대표의 유서 깊은 관현악단 ‘하노버 NDR라디오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아시아인 최초 비올라 종신 수석으로 선임되셨습니다. 오디션 과정이 험난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디션 전까지 저는 솔로와 실내악을 병행하여 공부하고 콩쿠르에 지원하느라 독일에서 오케스트라 경험이 전무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엑섭(오케스트라 곡의 비올라 파트 발췌 연주)’ 라운드 준비가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물론 엑섭도 열심히 준비했지만, 솔로 협주곡 라운드를 더욱 빈틈없이 준비했고 다행히 그 노력이 통했는지 파이널 라운드에 단독으로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엑섭 라운드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진 탓에 오케스트라 측에서는 ‘파이널은 못 올라갔지만 다른 라운드에서 연주를 잘했던’ 다른 참가자와 저를 객원 단원으로 함께 연주해 본 뒤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참여하게 된 객원 단원 라운드를 거쳐 결국 수석으로 선임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과정이었지만, 그만큼 값지고 감사한 자리입니다.
Q. 수많은 무대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다면요?
2022년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에서 버르토크의 비올라 콘체르토를 협연했던 무대가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지휘를 맡은 이승원 씨는 저와 같은 시기에 베를린에서 타베아 침머만 선생님을 사사했는데, 그 시절 서로 레슨을 청강하기도 하며 버르토크 콘체르토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금은 협연자와 지휘자가 되어 교향악축제라는 큰 무대에서 함께 연주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기도 하고 감개무량하게 느껴졌습니다.
Q. 음악 인생에서 특히 큰 영향을 미친 분은 누구인가요?
그동안 음악 활동을 해오며 정말 많은 분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저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들을 꼽자면 아벨 콰르텟과 실내악 레슨을 함께 받았던 에버하르트 펠츠 선생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은 현재 활동하고 있는 많은 정상급 콰르텟 중에 거치지 않은 팀이 없을 정도로 현악사중주 세계 안에서 득도의 경지(웃음)에 이른 도인 같은 분인데, 첫 레슨부터 마지막까지 매 순간이 충격의 연속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무리 좋은 소리도 연주자가 진심으로 하지 않으면 완전해질 수 없다’고 강조하셨고, ‘음악의 모든 순간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어떠한 감정이나 제스쳐, 연상할 수 있는 장면들로 생각하고 직접 느껴라’라며 주셨던 가르침을 지금도 계속 되뇌고 있습니다.
Q. 하노버 국립음대 교수로도 활동 중이신데요.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전하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제가 독일에 와서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임과 동시에 지금까지 배웠던 것과 다른 접근 방식이라고 느꼈던 점은 ‘음악을 즐겨라’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본적인 얘기일 수 있지만, 매일 연습하고 같은 곡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수천, 수만 번을 반복하는 학생들에게 음악을 그 자체로 사랑하고 즐기는 것은 연습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간혹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음악적으로 표현하고 즐기는 것 또한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야 갑자기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나아가 학생들이 음악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Q. 자신만의 연습 루틴이나 컨디션 관리를 위해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오케스트라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운동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제 컨디션에 맞춰 연습하고 쉴 수 있는 솔로나 실내악과 달리, 오케스트라는 짜인 플랜에 저를 맞춰야 해서 몸이 좋지 않으면 폼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연습에서는 스케일과 비브라토 같은 기본기를 다듬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곡 연습에 앞서 테크닉적인 부분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져야 표현과 소리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존경하는 음악가가 있으신가요?
존경하는 비올리스트 중 한 분이 노부코 이마이 선생님입니다. 도쿄 콩쿠르 입상 후 일본 4개 도시 갈라 콘서트 투어 때 선생님과 함께했는데, 뒤풀이 식사에 항상 안 계셨습니다. 알고 보니 한 학생이라도 더 레슨하기 위해 저희보다 먼저 기차를 타고 다음 도시로 이동하셨다고 합니다. 당시 이미 여든 가까운 연세에도 음악과 제자들에게 열정을 쏟는 모습이 매우 존경스러웠습니다. 저도 언젠가 선생님처럼 음악과 제자들에게 헌신하는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휘자로는 카를로스 클라이버를 존경합니다. 그분은 완벽주의자로 많은 음반을 남기진 않았지만, 남긴 작품들은 한음 한음 깊이 연구한 흔적과 진심이 느껴집니다. 저도 스스로를 엄격히 연구하며 듣는 이들의 마음을 울리는 음악가가 되고 싶습니다.
Q. 다가올 4월 17일,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The Masters-김세준 비올라 리사이틀』에서는 어떤 점에 주목하며 관람하면 좋을까요?
이번 리사이틀의 프로그램은 다소 깊이 있고 어두운 색채를 지닌 곡들입니다. 특히 2부에 연주될 두 곡은 온도차가 명히 대조되는데요. 밀슈타인의 파가니니아나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면, 쇼스타코비치의 비올라 소나타는 작곡가가 삶의 끝자락에서 베토벤에 대한 존경심과 인간 쇼스타코비치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낸 곡이어서 엄청난 무게감과 깊이감을 가지고 있는 곡입니다. 두 곡이 가지고 있는 온도차를 한껏 느껴보시고, 저라는 음악가를 통해 얼마나 다르게 표현되는지가 관람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웃음).
Q. 앞으로의 목표나 꿈이 궁금합니다.
저는 여전히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믿기에,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작년 발트 앙상블 정기 공연 앙코르곡으로 제가 쓴 곡을 연주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작곡가가 되는 것을 꿈꾼 적이 있었는데, 자작곡이 처음 무대에서 연주되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작곡한 곡이 메인 프로그램으로 연주되는 날을 꿈꾸며,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노력할 것입니다.
어떤 음악은 단순히 귀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까지 찾아와 조용히 문을 두드린다. 연주자가 진심으로 음악을 즐길 때, 청중은 감동한다. 김세준에게 비올라는 연주를 위한 도구일 뿐 아니라 삶과 감정을 담아내는 그만의 언어다. 바이올린으로 음악을 시작해, 자신이 추구하는 소리를 좇아 비올라를 선택한 그는, 단순히 연주를 넘어 음악 그 자체를 깊이 이해하는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자신만의 길을 다져가는 김세준의 무대에 그만의 음악이 가득 차기를 바란다.
Q.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케스트라 협연, 실내악, 독주회 등 국내외 많은 공연을 통해 비올라의 매력을 선사하고 계십니다. <누룩> 독자분들께 인사와 함께 근황을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오는 4월 대구콘서트하우스 『The Masters-김세준 비올라 리사이틀』로 찾아뵙게 될 비올리스트 김세준입니다. 반갑습니다!
Q. 어린 시절 처음 음악을 접하게 된 계기나 특별한 동기가 있었나요?
저희 부모님은 두 분 다 음악 전공자는 아니시지만, 어머니께서 대학교 관현악 동아리에서 클래식 음악을 접하신 경험이 있으셨어요. 그래서 아이들을 키울 때 취미로라도 음악을 배우게 하고 싶으셨다고 해요. 그렇게 누나와 제가 어렸을 때 동네 음악학원에 다녔는데, 제가 바이올린을 너무 좋아해서 오히려 부모님이 당황하셨다고 하십니다(웃음). 선생님께서 내준 숙제 이상으로 혼자 진도를 나가며 연습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전공을 시켜야겠다고 결심하셨다고 합니다.
Q. 대학원 시절 비올라로 전향하셨는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전향을 결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졸업한 한국예술종합학교에는 솔로뿐만 아니라 실내악 관련 커리큘럼도 많이 있습니다. 어느 날 실내악 리허설 쉬는 시간에 비올라 전공 선배와 서로 악기를 바꿔 연주를 해보게 됐어요. 그 순간 비올라가 가진 매력에 매료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계속 전향을 고민하던 중 우연한 기회가 찾아와 비올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 성향과 비올라는 참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제가 추구하는 소리도 비올라에 더욱 잘 어울렸고요. 당시 주변 선후배들도 “세준이는 비올라를 하면 정말 잘할 것 같아”라고 격려해 준 덕분에 용기를 내어 전향할 수 있었습니다.
Q. 독일에서 오래 유학하시고, 현재는 겸임교수로 출강도 하고 계시죠. 독일에 가기 전과 후를 비교한다면 무엇이 가장 달라졌나요?
2010년에 독일에 처음 왔으니 벌써 15년이 되었네요. 유학 전에는 부모님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음악에 전념했다면, 독일에서는 모든 행동에 책임이 따르고, 모든 것들이 쌓여 ‘저’라는 사람을 만든다고 느꼈습니다. 조금씩 더 생각하고 행동하며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음악을 단순히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이젠 제 인생이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클래식 음악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독일에서 직접 부딪히고 배우다 보니, 어느 순간 음악적으로 더 깊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이런 변화 덕에 그저 ‘잘’ 하거나 ‘좋은’ 소리를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인생의 경험을 토대로 작곡가의 의도나 감정 등을 대입하고 표현하려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2013~2019년 현악사중주단 ‘아벨 콰르텟’의 창단 멤버로 활동하셨죠. 그룹 활동으로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많이 거두셨는데, 팀원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운이 좋게도 결성 직후 팀으로서 뮌헨 국립음대에서 함께 공부할 기회를 얻었고, 레슨을 함께 받으며 서로의 음악에 대해 많이 배우고 공유했습니다. 같은 경험을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호흡도 점점 맞아갔던 것 같아요. 매 순간 인지하고 있진 않지만, 어느 순간 리허설이나 연주 중에, 또는 녹음한 음원을 듣다 보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소리나 음악이 서로 많이 비슷해졌구나!’하는 느낌을 많이 받곤 했습니다. 그렇게 공감대를 형성해 가며 팀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Q. 현재 발트 앙상블의 비올라 수석이자 부 음악감독을 담당하고 계시는데, 감독자의 시선에서 보는 앙상블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앙상블의 음악감독이신 이지혜 교수님을 도우며 많은 의견을 제시하고 공유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연주 곡목과 그 프로그램에 담긴 테마와 메시지 등을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휘자가 없는 단체이다 보니, 첫 리허설 전부터 연주 곡목을 많이 공부하고 준비하면서 다양한 아이디어 등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감독님과 저는 잘 맞는 부분도 많고, 서로의 음악을 참 좋아합니다(웃음). 감독님은 감각이 뛰어난 음악가이기에 저는 그걸 채워줄 수 있는 이론적인 근거 등을 찾는 것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원하는 음악이 같아도 많은 이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하나의 소리로 표현해야 하기에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며 음악을 공유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연주 난도가 높아 기억에 남는 곡이 있나요?
너무 많은데요(웃음). 이번 독주회 마지막 곡으로 연주할 쇼스타코비치 소나타가 비올라 레퍼토리 중 가장 깊이 있는 곡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깊이를 이해하고 노력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이 곡은 작곡가의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69세의 쇼스타코비치가 느꼈을 감정을 이해하려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또 하나 떠오르는 곡은 브람스의 비올라 소나타 1번입니다. 이 곡은 정말 많이 연주되는 곡인 만큼 개인적으로도 많이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표현적으로 비교적 명확한 요구사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표현되지 않아 어려움을 느꼈던 곡입니다.
Q. 2019년에 북독일 대표의 유서 깊은 관현악단 ‘하노버 NDR라디오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아시아인 최초 비올라 종신 수석으로 선임되셨습니다. 오디션 과정이 험난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디션 전까지 저는 솔로와 실내악을 병행하여 공부하고 콩쿠르에 지원하느라 독일에서 오케스트라 경험이 전무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엑섭(오케스트라 곡의 비올라 파트 발췌 연주)’ 라운드 준비가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물론 엑섭도 열심히 준비했지만, 솔로 협주곡 라운드를 더욱 빈틈없이 준비했고 다행히 그 노력이 통했는지 파이널 라운드에 단독으로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엑섭 라운드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진 탓에 오케스트라 측에서는 ‘파이널은 못 올라갔지만 다른 라운드에서 연주를 잘했던’ 다른 참가자와 저를 객원 단원으로 함께 연주해 본 뒤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참여하게 된 객원 단원 라운드를 거쳐 결국 수석으로 선임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과정이었지만, 그만큼 값지고 감사한 자리입니다.
Q. 수많은 무대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다면요?
2022년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에서 버르토크의 비올라 콘체르토를 협연했던 무대가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지휘를 맡은 이승원 씨는 저와 같은 시기에 베를린에서 타베아 침머만 선생님을 사사했는데, 그 시절 서로 레슨을 청강하기도 하며 버르토크 콘체르토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금은 협연자와 지휘자가 되어 교향악축제라는 큰 무대에서 함께 연주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기도 하고 감개무량하게 느껴졌습니다.
Q. 음악 인생에서 특히 큰 영향을 미친 분은 누구인가요?
그동안 음악 활동을 해오며 정말 많은 분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저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들을 꼽자면 아벨 콰르텟과 실내악 레슨을 함께 받았던 에버하르트 펠츠 선생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은 현재 활동하고 있는 많은 정상급 콰르텟 중에 거치지 않은 팀이 없을 정도로 현악사중주 세계 안에서 득도의 경지(웃음)에 이른 도인 같은 분인데, 첫 레슨부터 마지막까지 매 순간이 충격의 연속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무리 좋은 소리도 연주자가 진심으로 하지 않으면 완전해질 수 없다’고 강조하셨고, ‘음악의 모든 순간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어떠한 감정이나 제스쳐, 연상할 수 있는 장면들로 생각하고 직접 느껴라’라며 주셨던 가르침을 지금도 계속 되뇌고 있습니다.
Q. 하노버 국립음대 교수로도 활동 중이신데요.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전하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제가 독일에 와서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임과 동시에 지금까지 배웠던 것과 다른 접근 방식이라고 느꼈던 점은 ‘음악을 즐겨라’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본적인 얘기일 수 있지만, 매일 연습하고 같은 곡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수천, 수만 번을 반복하는 학생들에게 음악을 그 자체로 사랑하고 즐기는 것은 연습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간혹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음악적으로 표현하고 즐기는 것 또한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야 갑자기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나아가 학생들이 음악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Q. 자신만의 연습 루틴이나 컨디션 관리를 위해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오케스트라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운동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제 컨디션에 맞춰 연습하고 쉴 수 있는 솔로나 실내악과 달리, 오케스트라는 짜인 플랜에 저를 맞춰야 해서 몸이 좋지 않으면 폼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연습에서는 스케일과 비브라토 같은 기본기를 다듬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곡 연습에 앞서 테크닉적인 부분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져야 표현과 소리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존경하는 음악가가 있으신가요?
존경하는 비올리스트 중 한 분이 노부코 이마이 선생님입니다. 도쿄 콩쿠르 입상 후 일본 4개 도시 갈라 콘서트 투어 때 선생님과 함께했는데, 뒤풀이 식사에 항상 안 계셨습니다. 알고 보니 한 학생이라도 더 레슨하기 위해 저희보다 먼저 기차를 타고 다음 도시로 이동하셨다고 합니다. 당시 이미 여든 가까운 연세에도 음악과 제자들에게 열정을 쏟는 모습이 매우 존경스러웠습니다. 저도 언젠가 선생님처럼 음악과 제자들에게 헌신하는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휘자로는 카를로스 클라이버를 존경합니다. 그분은 완벽주의자로 많은 음반을 남기진 않았지만, 남긴 작품들은 한음 한음 깊이 연구한 흔적과 진심이 느껴집니다. 저도 스스로를 엄격히 연구하며 듣는 이들의 마음을 울리는 음악가가 되고 싶습니다.
Q. 다가올 4월 17일,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The Masters-김세준 비올라 리사이틀』에서는 어떤 점에 주목하며 관람하면 좋을까요?
이번 리사이틀의 프로그램은 다소 깊이 있고 어두운 색채를 지닌 곡들입니다. 특히 2부에 연주될 두 곡은 온도차가 명히 대조되는데요. 밀슈타인의 파가니니아나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면, 쇼스타코비치의 비올라 소나타는 작곡가가 삶의 끝자락에서 베토벤에 대한 존경심과 인간 쇼스타코비치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낸 곡이어서 엄청난 무게감과 깊이감을 가지고 있는 곡입니다. 두 곡이 가지고 있는 온도차를 한껏 느껴보시고, 저라는 음악가를 통해 얼마나 다르게 표현되는지가 관람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웃음).
Q. 앞으로의 목표나 꿈이 궁금합니다.
저는 여전히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믿기에,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작년 발트 앙상블 정기 공연 앙코르곡으로 제가 쓴 곡을 연주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작곡가가 되는 것을 꿈꾼 적이 있었는데, 자작곡이 처음 무대에서 연주되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작곡한 곡이 메인 프로그램으로 연주되는 날을 꿈꾸며,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노력할 것입니다.
어떤 음악은 단순히 귀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까지 찾아와 조용히 문을 두드린다. 연주자가 진심으로 음악을 즐길 때, 청중은 감동한다. 김세준에게 비올라는 연주를 위한 도구일 뿐 아니라 삶과 감정을 담아내는 그만의 언어다. 바이올린으로 음악을 시작해, 자신이 추구하는 소리를 좇아 비올라를 선택한 그는, 단순히 연주를 넘어 음악 그 자체를 깊이 이해하는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자신만의 길을 다져가는 김세준의 무대에 그만의 음악이 가득 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