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 T W O R K S



600년을 견딘 천국의 예배 

<겐트 제단화>

얀 반 에이크, 후베르트 반 에이크


 


newlooks










벨기에 겐트의 성 바보 대성당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제단화이자, 수난의 역사를 겪은 작품이 있다. 
도난과 약탈, 종교전쟁의 한복판에서도 기적처럼 살아남은 작품은 바로 〈겐트 제단화〉, 원제 〈신비한 어린 양의 경배〉다.


겐트 제단화 - <신비한 어린 양의 경배>

병풍처럼 펼쳐지는 제단화

1420년대 중반에 시작되어 1432년 완성된 이 작품은 얀 반 에이크와 후베르트 반 에이크 형제가 함께 만든 초기 유화의 걸작이다. 가로 5.2m, 세로 3.75m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의 이중 접이식 제단화로, 펼쳤을 때와 닫았을 때 각각 다른 장면을 보여준다. 마치 우리나라의 병풍처럼 접히는 구조는 제의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펼친 앞면의 상단에는 붉은 망토를 입은 하나님이 중앙에 있고, 양옆으로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이 자리한다. 가장자리에는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천사들, 그리고 아담과 이브가 배치되어 있다. 하단 패널의 중심에는 제단 위 어린 양이 있고, 그 주위로 성도와 죄인, 성직자와 군인들이 경배하는 모습이 펼쳐진다.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천국의 예배 장면이다.


상징을 통해 천국의 예배를 그리다

<겐트 제단화>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섬세한 디테일 속에 숨어있다. 하나님의 붉은 망토 옷자락에는 진주로 장식된 그리스어 비문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새겨져 있다. 그 뒤 황금빛 비단의 펠리컨 문양은 새끼를 위해 자신의 가슴을 찢는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며, 포도나무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나타낸다. 제단화의 핵심은 중앙 하단의 어린 양이다. 제단 위에 서서 가슴에서 피를 흘리는 어린 양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한다. 관람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어린 양에게 향하며 그 주위로 펼쳐진 경배의 장면 속으로 이어지게 된다.


겐트 제단화 - <신비한 어린 양의 경배>(어린양)

어린 양 주변의 푸른 초원에는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세 잎 클로버와, 마리아의 일곱 슬픔과 일곱 기쁨을 나타내는 일곱 잎 백합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의 나무와 정원은 사후 천국을 묘사한 것으로, 영생과 신앙의 치유력을 상징하는 상록수와 봄꽃, 약초들로 가득하다. 이 모든 식물은 단순 장식의 역할이 아니라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담은 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겐트 제단화 - <신비한 어린 양의 경배>(식물)

겹겹이 쌓아 올린 생동감 


15세기 초, 유화 기법이 막 정립되던 시기에 이처럼 정교하고 화려한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얀 반 에이크의 혁신적인 회화 기법 덕분이었다. 그는 유화 물감을 여러 겹으로 얇게 덧칠하여 세밀함과 깊이감을 구현했다. 밝은 색에서 어두운 색까지 최소 세 겹 이상 덧칠하는 방식으로, 실제 광경을 보는 듯한 생동감을 만들어냈다. 


최근 복원 과정에서 어린 양의 덧칠을 벗겨냈을 때, 그 아래에서 더욱 사실적인 원래의 모습이 드러났다.


겐트 제단화 - <신비한 어린 양의 경배>(어린양) - 복원 전(왼쪽), 복원 후(오른쪽) / 

출처- CODART

수난의 역사 속에서

<겐트 제단화>는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녔다.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성상 파괴 운동의 위기에서 가톨릭 수사들이 종탑에 숨겨 보호했고, 프랑스 혁명 시기에는 파리로 약탈되었다가 1815년 돌아왔다. 1934년에는 도난 사건이 발생해 ‘정의로운 심판관’ 패널은 아직도 행방을 알 수 없다. 전쟁과 약탈, 도난의 역사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작품은 2020년 대대적인 복원을 마치고 본래의 자리인 성 바보 대성당으로 돌아왔다. 


화려한 색채와 정교한 묘사, 무수한 상징들은 모두 한 곳을 향한다. 제단 위에 선 어린 양이다. 인류를 위해 피 흘린 하나님의 어린 양은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을 동시에 담아낸다. 600년이 지난 지금도 겐트 제단화는 천국의 예배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November · December  2025  vol.114
CHRIST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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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을 견딘 천국의 예배 

<겐트 제단화>

얀 반 에이크, 후베르트 반 에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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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겐트의 성 바보 대성당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제단화이자, 수난의 역사를 겪은 작품이 있다. 
도난과 약탈, 종교전쟁의 한복판에서도 기적처럼 살아남은 작품은 바로〈겐트 제단화〉, 원제〈신비한 어린 양의 경배〉다.



병풍처럼 펼쳐지는 제단화

겐트 제단화 - <신비한 어린 양의 경배>

1420년대 중반에 시작되어 1432년 완성된 이 작품은 얀 반 에이크와 후베르트 반 에이크 형제가 함께 만든 초기 유화의 걸작이다. 가로 5.2m, 세로 3.75m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의 이중 접이식 제단화로, 펼쳤을 때와 닫았을 때 각각 다른 장면을 보여준다. 마치 우리나라의 병풍처럼 접히는 구조는 제의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펼친 앞면의 상단에는 붉은 망토를 입은 하나님이 중앙에 있고, 양옆으로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이 자리한다. 가장자리에는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천사들, 그리고 아담과 이브가 배치되어 있다. 하단 패널의 중심에는 제단 위 어린 양이 있고, 그 주위로 성도와 죄인, 성직자와 군인들이 경배하는 모습이 펼쳐진다.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천국의 예배 장면이다.

상징을 통해 천국의 예배를 그리다

겐트 제단화 - <신비한 어린 양의 경배>(어린양)

<겐트 제단화>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섬세한 디테일 속에 숨어있다. 하나님의 붉은 망토 옷자락에는 진주로 장식된 그리스어 비문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새겨져 있다. 그 뒤 황금빛 비단의 펠리컨 문양은 새끼를 위해 자신의 가슴을 찢는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며, 포도나무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나타낸다. 제단화의 핵심은 중앙 하단의 어린 양이다. 제단 위에 서서 가슴에서 피를 흘리는 어린 양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한다. 관람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어린 양에게 향하며 그 주위로 펼쳐진 경배의 장면 속으로 이어지게 된다. 


겐트 제단화 - <신비한 어린 양의 경배>(어린양)

어린 양 주변의 푸른 초원에는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세 잎 클로버와, 마리아의 일곱 슬픔과 일곱 기쁨을 나타내는 일곱 잎 백합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의 나무와 정원은 사후 천국을 묘사한 것으로, 영생과 신앙의 치유력을 상징하는 상록수와 봄꽃, 약초들로 가득하다. 이 모든 식물은 단순 장식의 역할이 아니라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담은 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겹겹이 쌓아 올린 생동감

겐트 제단화 - <신비한 어린 양의 경배>(어린양) 

- 복원 전(왼쪽), 복원 후(오른쪽) / 출처- CODART

15세기 초, 유화 기법이 막 정립되던 시기에 이처럼 정교하고 화려한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얀 반 에이크의 혁신적인 회화 기법 덕분이었다. 그는 유화 물감을 여러 겹으로 얇게 덧칠하여 세밀함과 깊이감을 구현했다. 밝은 색에서 어두운 색까지 최소 세 겹 이상 덧칠하는 방식으로, 실제 광경을 보는 듯한 생동감을 만들어냈다. 최근 복원 과정에서 어린 양의 덧칠을 벗겨냈을 때, 그 아래에서 더욱 사실적인 원래의 모습이 드러났다.


수난의 역사 속에서

<겐트 제단화>는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녔다.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성상 파괴 운동의 위기에서 가톨릭 수사들이 종탑에 숨겨 보호했고, 프랑스 혁명 시기에는 파리로 약탈되었다가 1815년 돌아왔다. 1934년에는 도난 사건이 발생해 ‘정의로운 심판관’ 패널은 아직도 행방을 알 수 없다. 전쟁과 약탈, 도난의 역사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작품은 2020년 대대적인 복원을 마치고 본래의 자리인 성 바보 대성당으로 돌아왔다. 


화려한 색채와 정교한 묘사, 무수한 상징들은 모두 한 곳을 향한다. 제단 위에 선 어린 양이다. 인류를 위해 피 흘린 하나님의 어린 양은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을 동시에 담아낸다. 600년이 지난 지금도 겐트 제단화는 천국의 예배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