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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LEE JUNG EUN
건반으로 전하는, 
마음의 목소리



피 아 니 스 트

이 정 은



P I A N I S T
L E E  J U N G  E U N


글 · 인터뷰  newlooks


사진 제공 아투즈컴퍼니(ARTuz Company)

88개의 건반이 만드는 무수한 소리의 예술, 피아노. 피아노 음의 조합이나 기교가 만드는 기술적 다양성은 물론, 
연주자가 담아내는 저마다의 감성은 같은 곡이라도 다른 음악이 되어 관객에게 전달된다. 


음악은 연주자의 이야기를 담는다. 피아노의 다양한 음색에 매료되어 자신의 감성과 이야기를 
성악가의 목소리처럼 담고자 하는 아티스트가 있다. 섬세하면서 풍부한 감성으로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 
공연이 끝난 후 감동을 남기는 사람. 선명하고도 올곧은 울림을 전하는, 피아니스트 이정은을 만났다.

January · February 2025 vol.109
COVER STORY





 건반으로 전하는,
마음의 목소리

피 아 니 스 트
이 정 은


P I A N I S T
L E E  J U N G  E U N






글 · 인터뷰 newlooks

 사진 제공 아투즈컴퍼니(ARTuz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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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개의 건반이 만드는 무수한 소리의 예술, 피아노. 피아노 음의 조합이나 기교가 만드는 기술적 다양성은 물론, 연주자가 담아내는 저마다의 감성은 같은 곡이라도 다른 음악이 되어 관객에게 전달된다. 음악은 연주자의 이야기를 담는다. 피아노의 다양한 음색에 매료되어 자신의 감성과 이야기를 성악가의 목소리처럼 담고자 하는 아티스트가 있다. 섬세하면서 풍부한 감성으로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 공연이 끝난 후 감동을 남기는 사람. 선명하고도 올곧은 울림을 전하는, 피아니스트 이정은을 만났다.


Q.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케스트라 협연, 실내악, 독주회 등 국내외 많은 피아노 공연을 통해 정통 클래식의 감동을 전하고 계시죠.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근황을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울예고와 연세대학교를 졸업 후 독일로 떠나 7년간의 유학 생활을 거쳐 현재 연세대, 경희대, 중앙대, 서울시립대에 출강하며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3년부터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 시리즈>를 진행하며, 현재 세 번째 시리즈까지 마친 상태로 오는 4월과 12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네 번째, 다섯 번째 시리즈가 예정되어 있어요.


 


Q. 명문 음대 및 대학원 전액 장학금 수혜 졸업, 그리고 독일 유학 시절 최고점 졸업까지 ‘모범생’, ‘엘리트’라는 말이 어울립니다. 그 이전, 어릴 적 어떤 소녀였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저는 그야말로 그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는, 친구들을 좋아하는 밝은 소녀였는데요. 전공의 특성상 자유시간이 거의 없고 연습에 매진해야 했지만,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항상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Q. 예술가로서 음악에 푹 빠져 건반을 섬세하게 누르는 모습을 보면, 문득 음악을 어떻게 처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집니다. 

어머니께서 작곡을 전공하시고 워낙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셔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어머니께서 연주해 주시던 ‘쇼팽의 즉흥환상곡‘의 소리가 들린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어머니께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죠. 이후 피아니스트 구자은 선생님께 받은 첫 레슨에서, 건반을 누르는 방식에 따라 소리의 색깔이 달라지는 것에 너무 큰 매력을 느꼈어요. 여전히 생생한 그때의 느낌과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지금까지 피아노와 함께하고 있습니다(웃음). 


Q. 많은 콩쿠르에서 최고의 자리를 석권하셨어요. 이면에는 고된 노력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라 감히 예상합니다. 콩쿠르를 준비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콩쿠르는 기본적으로 경쟁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긴장되고 정신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쓰게 돼요. 그렇지만 콩쿠르 무대도 결국은 ‘연주’라고 생각하고 ‘내가 할 수 있고 들려주고 싶은 연주’에 최대한 집중하며 대회에 임했습니다. 그러면서 무대 위 자기 자신한테만 배울 수 있는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콩쿠르에 참가할 때마다 저 자신에게 배움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Q.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위치에 계시지만, 정은 님도 학생으로서 오랜 배움의 시간을 보내셨어요. 오랫동안 실력을 쌓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전공의 특성상 스승님께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닌, 음악적인 부분과 인간으로서의 모든 면도 함께 배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운이 좋게 지금까지도 스승님들께서 ‘음악가로서 살아가고 싶은 삶’을 보여주고 계셔서 지금도 끊임없이 저를 채찍질하며 정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학창 시절에도 스승님께 당장 직면한 시험, 콩쿠르, 입시와 같은 일들보다는 음악 자체에 더 무게를 두고 진정으로 마음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가진 음악을 우선시하라는 교훈을 얻었고, 지금도 그 마음가짐으로 음악에 임하고 있습니다.


Q. 독일로 건너가 에센 폴크방 국립음대와 프랑크푸르트 국립음대에서 공부하셨죠. 독일 유학 시절, 기억에 남는 부분이나 가장 크게 얻은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우선 음악이 삶에 너무나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스며들어 있는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음악의 본고장이라는 단어를 새삼 떠올리게 되었어요. 한국에서는 마음이나 머리에 여유가 없이 그저 많은 시간을 연습에 투자해야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독일에서는 그보다 여유가 생기고 그 여유가 결코 게으른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음악을 이전과는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경험을 많이 했어요. 예를 들면, 독일인 첼리스트 친구와 베토벤 첼로 소나타를 함께 공부한 적이 있는데, 그 친구는 제가 생각하던 베토벤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더군요. 그 친구와 다섯 곡의 첼로 소나타를 공부하며 즐거움을 느낀 경험이 있습니다. 



Q. 고전 음악가 베토벤에 대한 고찰이 남달리 깊은 것 같아요. 어떤 점이 베토벤을 탐구하도록 했나요?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작곡가들의 음악을 접하면서 베토벤의 ‘완벽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에 점점 더 매료된 것 같습니다. 그의 음악은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건축물과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는 베토벤이 신체적인 약점을 극복하고 예술에 대한 갈망이 드리워져 나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음악가의 이미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베토벤에 대해 더 깊게 알고 싶었고, 32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통해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Q. 소개해 주신 것처럼 많은 대학에 출강 중이십니다. 요즘의 학생들과 함께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받고 보람도 느끼실 것 같아요. 제자들을 보며 학창 시절이 겹쳐 보인다거나 달라진 점이 보인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같이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눈을 반짝이는 학생들을 보면 정말 그 어떤 작은 것이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제 학창 시절의 어려웠던 점들을 떠올리며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알려주려고 합니다. 요즘 학생들은 저희 세대가 공부할 때보다 더 똑똑하다고 해야 할까요? 하고 싶은 것들도 잘 즐기면서 해야 할 일도 놓치지 않게 컨트롤을 잘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학생들을 보면 더욱 음악을 즐기면서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Q. 수없이 많은 무대에 오르셨겠지만, 그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참가했던 중앙음악콩쿠르 2차 예선 무대가 기억나는데요, 그때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하면서 처음으로 ‘내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하고 느꼈습니다. 이후 음악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터라 잊지 못하는 무대로 기억 속에 남아있어요. 독일 유학 시절 라이힐링엔(Leichlingen)이라는 도시에서 했던 독주회도 기억에 남네요. 연주 후 곱게 단장하신 할머니 관객분께서 대기실에 찾아오셔서는 ‘죽기 전에 이렇게 감동적인 연주를 듣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며 제 손에 20유로 지폐를 쥐여주셨죠. 그 무대로 인해서 ‘아, 내 연주가 정말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구나’하고 느꼈습니다.



Q. 음악적 커리어를 이어오시며 가족, 친지, 사사하신 선생님 등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받으셨을 텐데, 음악 인생에서 특히 큰 영향을 받은 분이 있다면, 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제 음악 인생에서 스승님이신 피아니스트 김영호, 구자은 선생님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두 분께 배우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음악을 이어오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잘 나이 듦’인데요, 앞으로도 두 분은 저에게 음악가로서, 또 한 어른으로서 살아갈 방향을 알려주시는 평생의 스승님이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좋은 표현력을 지닌 분들을 보면, 평소 무엇을 보고 들으며 영감이나 활력을 얻는지 궁금해집니다. 공연이나 연습 외의 시간에 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시나요? 

거창한 취미는 없지만 여행하며 자연에서 영감받는 것을 좋아하고, 맛집에서 셰프님들이 정성스럽게 내어주시는 요리를 먹으며 여러 감각으로 느끼는 것도 좋아하는 편입니다.


Q. 공연 중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고, 몸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연주에 더욱 집중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연주 중 표정의 변화, 특히 혼잣말하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인데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사실 저도 제 연주 영상을 보고 놀랄 때도 있는데요(웃음). 학생들에게 레슨할 때, ‘말하는 것처럼’ 혹은 ‘성악가가 노래하는 것처럼’ 연주하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제가 연주를 할 때에도 이처럼 하다 보니 혼잣말을 하는 듯한 모습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Q. 연주자로서 연주에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도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에 대한 자신만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그 이야기가 관객의 마음에 감동과 울림을 주는 것이 연주자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자 가져야 하는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Q. 다가올 1월 18일, 대구 콘서트하우스에서 『이정은 피아노 독주회 ‘피아니스트 이정은의 Dear Franz’』 공연을 앞두고 있으십니다. 관람객들이 더욱 즐길 수 있도록 이번 공연에서 특히 집중할 만한 관람 포인트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1부에는 슈베르트의 즉흥곡과 소나타, 2부에는 슈베르트의 가곡 “물 위에서 노래함”과 “물레감는 그레첸”, 그리고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아리아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을 리스트가 편곡한 음악들과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를 연주할 예정입니다. 슈베르트 음악만의 서정적이고 가곡적인 음악들과 리스트의 음악들로 시간이 흐르듯 음악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느껴보실 수 있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준비 중입니다. 


Q. 끝으로,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연주자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관객분들께 감동을 드릴 수 있도록, 더 좋은 음악을 위해 계속해서 매진할 거예요. 그리고 교육자의 입장에서 학생들이 즐거움으로 좋은 음악인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함께 노력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당분간은 다른 연주들과 더불어 계속 진행되고 있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 시리즈>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묵묵히 한길을 걸어온 이정은의 음악에는 순수한 열정과 고아한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녀의 표정만큼이나 다채로운 선율은 온 청중의 마음에 색깔을 입힌다. 음악에 대한 사랑을 첫 번째로 여기는 모습은 그녀가 묘사하는 스승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감동적인 마음의 소리를 전하려는 피아니스트 이정은에게 언제나 청중이 가득한 무대가 있기를 바란다.


Q.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케스트라 협연, 실내악, 독주회 등 국내외 많은 피아노 공연을 통해 정통 클래식의 감동을 전하고 계시죠.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근황을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울예고와 연세대학교를 졸업 후 독일로 떠나 7년간의 유학 생활을 거쳐 현재 연세대, 경희대, 중앙대, 서울시립대에 출강하며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3년부터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 시리즈>를 진행하며, 현재 세 번째 시리즈까지 마친 상태로 오는 4월과 12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네 번째, 다섯 번째 시리즈가 예정되어 있어요. 


Q. 명문 음대 및 대학원 전액 장학금 수혜 졸업, 그리고 독일 유학 시절 최고점 졸업까지 ‘모범생’, ‘엘리트’라는 말이 어울립니다. 그 이전, 어릴 적 어떤 소녀였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저는 그야말로 그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는, 친구들을 좋아하는 밝은 소녀였는데요. 전공의 특성상 자유시간이 거의 없고 연습에 매진해야 했지만,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항상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Q. 예술가로서 음악에 푹 빠져 건반을 섬세하게 누르는 모습을 보면, 문득 음악을 어떻게 처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집니다. 

어머니께서 작곡을 전공하시고 워낙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셔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어머니께서 연주해 주시던 ‘쇼팽의 즉흥환상곡‘의 소리가 들린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어머니께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죠. 이후 피아니스트 구자은 선생님께 받은 첫 레슨에서, 건반을 누르는 방식에 따라 소리의 색깔이 달라지는 것에 너무 큰 매력을 느꼈어요. 여전히 생생한 그때의 느낌과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지금까지 피아노와 함께하고 있습니다(웃음).


Q. 많은 콩쿠르에서 최고의 자리를 석권하셨어요. 이면에는 고된 노력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라 감히 예상합니다. 콩쿠르를 준비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콩쿠르는 기본적으로 경쟁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긴장되고 정신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쓰게 돼요. 그렇지만 콩쿠르 무대도 결국은 ‘연주’라고 생각하고 ‘내가 할 수 있고 들려주고 싶은 연주’에 최대한 집중하며 대회에 임했습니다. 그러면서 무대 위 자기 자신한테만 배울 수 있는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콩쿠르에 참가할 때마다 저 자신에게 배움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Q.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위치에 계시지만, 정은 님도 학생으로서 오랜 배움의 시간을 보내셨어요. 오랫동안 실력을 쌓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전공의 특성상 스승님께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닌, 음악적인 부분과 인간으로서의 모든 면도 함께 배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운이 좋게 지금까지도 스승님들께서 ‘음악가로서 살아가고 싶은 삶’을 보여주고 계셔서 지금도 끊임없이 저를 채찍질하며 정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학창 시절에도 스승님께 당장 직면한 시험, 콩쿠르, 입시와 같은 일들보다는 음악 자체에 더 무게를 두고 진정으로 마음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가진 음악을 우선시하라는 교훈을 얻었고, 지금도 그 마음가짐으로 음악에 임하고 있습니다.


Q. 독일로 건너가 에센 폴크방 국립음대와 프랑크푸르트 국립음대에서 공부하셨죠. 독일 유학 시절, 기억에 남는 부분이나 가장 크게 얻은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우선 음악이 삶에 너무나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스며들어 있는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음악의 본고장이라는 단어를 새삼 떠올리게 되었어요. 한국에서는 마음이나 머리에 여유가 없이 그저 많은 시간을 연습에 투자해야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독일에서는 그보다 여유가 생기고 그 여유가 결코 게으른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음악을 이전과는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경험을 많이 했어요. 예를 들면, 독일인 첼리스트 친구와 베토벤 첼로 소나타를 함께 공부한 적이 있는데, 그 친구는 제가 생각하던 베토벤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더군요. 그 친구와 다섯 곡의 첼로 소나타를 공부하며 즐거움을 느낀 경험이 있습니다.


Q. 고전 음악가 베토벤에 대한 고찰이 남달리 깊은 것 같아요. 어떤 점이 베토벤을 탐구하도록 했나요?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작곡가들의 음악을 접하면서 베토벤의 ‘완벽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에 점점 더 매료된 것 같습니다. 그의 음악은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건축물과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는 베토벤이 신체적인 약점을 극복하고 예술에 대한 갈망이 드리워져 나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음악가의 이미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베토벤에 대해 더 깊게 알고 싶었고, 32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통해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Q. 소개해 주신 것처럼 많은 대학에 출강 중이십니다. 요즘의 학생들과 함께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받고 보람도 느끼실 것 같아요. 제자들을 보며 학창 시절이 겹쳐 보인다거나 달라진 점이 보인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같이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눈을 반짝이는 학생들을 보면 정말 그 어떤 작은 것이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제 학창 시절의 어려웠던 점들을 떠올리며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알려주려고 합니다. 요즘 학생들은 저희 세대가 공부할 때보다 더 똑똑하다고 해야 할까요? 하고 싶은 것들도 잘 즐기면서 해야 할 일도 놓치지 않게 컨트롤을 잘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학생들을 보면 더욱 음악을 즐기면서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Q. 수없이 많은 무대에 오르셨겠지만, 그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참가했던 중앙음악콩쿠르 2차 예선 무대가 기억나는데요, 그때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하면서 처음으로 ‘내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하고 느꼈습니다. 이후 음악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터라 잊지 못하는 무대로 기억 속에 남아있어요. 독일 유학 시절 라이힐링엔(Leichlingen)이라는 도시에서 했던 독주회도 기억에 남네요. 연주 후 곱게 단장하신 할머니 관객분께서 대기실에 찾아오셔서는 ‘죽기 전에 이렇게 감동적인 연주를 듣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며 제 손에 20유로 지폐를 쥐여주셨죠. 그 무대로 인해서 ‘아, 내 연주가 정말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구나’하고 느꼈습니다.


Q. 음악적 커리어를 이어오시며 가족, 친지, 사사하신 선생님 등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받으셨을 텐데, 음악 인생에서 특히 큰 영향을 받은 분이 있다면, 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제 음악 인생에서 스승님이신 피아니스트 김영호, 구자은 선생님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두 분께 배우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음악을 이어오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잘 나이 듦’인데요, 앞으로도 두 분은 저에게 음악가로서, 또 한 어른으로서 살아갈 방향을 알려주시는 평생의 스승님이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좋은 표현력을 지닌 분들을 보면, 평소 무엇을 보고 들으며 영감이나 활력을 얻는지 궁금해집니다. 공연이나 연습 외의 시간에 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시나요?  

거창한 취미는 없지만 여행하며 자연에서 영감받는 것을 좋아하고, 맛집에서 셰프님들이 정성스럽게 내어주시는 요리를 먹으며 여러 감각으로 느끼는 것도 좋아하는 편입니다.


Q. 공연 중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고, 몸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연주에 더욱 집중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연주 중 표정의 변화, 특히 혼잣말하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인데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사실 저도 제 연주 영상을 보고 놀랄 때도 있는데요(웃음). 학생들에게 레슨할 때, ‘말하는 것처럼’ 혹은 ‘성악가가 노래하는 것처럼’ 연주하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제가 연주를 할 때에도 이처럼 하다 보니 혼잣말을 하는 듯한 모습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Q. 연주자로서 연주에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도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에 대한 자신만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그 이야기가 관객의 마음에 감동과 울림을 주는 것이 연주자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자 가져야 하는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Q. 다가올 1월 18일, 대구 콘서트하우스에서 『이정은 피아노 독주회 ‘피아니스트 이정은의 Dear Franz’』 공연을 앞두고 있으십니다. 관람객들이 더욱 즐길 수 있도록 이번 공연에서 특히 집중할 만한 관람 포인트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1부에는 슈베르트의 즉흥곡과 소나타, 2부에는 슈베르트의 가곡 “물 위에서 노래함”과 “물레감는 그레첸”, 그리고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아리아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을 리스트가 편곡한 음악들과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를 연주할 예정입니다. 슈베르트 음악만의 서정적이고 가곡적인 음악들과 리스트의 음악들로 시간이 흐르듯 음악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느껴보실 수 있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준비 중입니다. 


Q. 끝으로,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연주자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관객분들께 감동을 드릴 수 있도록, 더 좋은 음악을 위해 계속해서 매진할 거예요. 그리고 교육자의 입장에서 학생들이 즐거움으로 좋은 음악인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함께 노력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당분간은 다른 연주들과 더불어 계속 진행되고 있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 시리즈>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묵묵히 한길을 걸어온 이정은의 음악에는 순수한 열정과 고아한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녀의 표정만큼이나 다채로운 선율은 온 청중의 마음에 색깔을 입힌다. 음악에 대한 사랑을 첫 번째로 여기는 모습은 그녀가 묘사하는 스승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감동적인 마음의 소리를 전하려는 피아니스트 이정은에게 언제나 청중이 가득한 무대가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