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STORY
CLASSIC HIP 2


클래식 음악을 떠올릴 때 흔히 바이올린과 피아노처럼 악기를 연상하지만, 클래식 음악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목소리다. 

성악은 감정의 깊이를 담아내는 가장 원초적인 음악이다. 오페라의 아리아부터 독일 리트(Lied), 미사곡과 종교음악의 성가에 이르기까지, 성악은 감정과 서사의 전달자이자, 고전음악의 가장 본질적인 매개체였다. 

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만큼 진입 장벽이 높은 장르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어, 독일어 등 익숙하지 않은 언어, 다소 과장된 연기와 몸짓, 그리고 ‘고음’과 ‘비브라토’로 상징되는 발성법은 성악을 ‘어려운 음악’이라고 생각하게 했다. 그런데 요즘, 이 ‘고전적인 목소리’가 우리 시대의 삶과 연결되고 있다. 다양한 미디어와 기술, 그리고 대중문화의 변화 속에서 성악은 다시금 젊은 세대의 재생목록에 등장하고 있다.

September · October  2025  vol.113
SPECIAL STORY


클래식 음악을 떠올릴 때 흔히 바이올린과 피아노처럼 악기를 연상하지만, 클래식 음악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목소리다. 성악은 감정의 깊이를 담아내는 가장 원초적인 음악이다. 오페라의 아리아부터 독일 리트(Lied), 미사곡과 종교음악의 성가에 이르기까지, 성악은 감정과 서사의 전달자이자, 고전음악의 가장 본질적인 매개체였다. 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만큼 진입 장벽이 높은 장르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어, 독일어 등 익숙하지 않은 언어, 다소 과장된 연기와 몸짓, 그리고 ‘고음’과 ‘비브라토’로 상징되는 발성법은 성악을 ‘어려운 음악’이라고 생각하게 했다. 그런데 요즘, 이 ‘고전적인 목소리’가 우리 시대의 삶과 연결되고 있다. 다양한 미디어와 기술, 그리고 대중문화의 변화 속에서 성악은 다시금 젊은 세대의 재생목록에 등장하고 있다.


성악은 왜 어려웠을까?

클래식의 부활은 디지털의 힘으로 가능해졌다. 과거처럼 CD를 사지 않아도, 원하는 클래식 곡을 스트리밍으로 즉시 찾을 수 있다. 유튜브·멜론·스포티파이 등은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가 선호할 만한 클래식 곡을 자동 추천해 준다. 이로 인해 클래식은 ‘자신이 의식적으로 선택하지 않아도 접하게 되는 음악’이 되었다. 게다가 이제는 AI가 작곡하거나 복원한 클래식까지 등장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클래식 역사엔 미완의 음악들이 많은데, 이는 걸작이긴 해도 작곡가의 손길이 마지막까지 닿지는 못한 작품들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이 이야기들을 다시 쓰고 있다. 지난 2월, 대만의 푸위 심포니오케스트라는 AI가 작곡한 클래식 음악으로 구성된 음악회를 개최해 화제를 모았다. 특히 AI가 완성한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 3, 4악장과 베토벤의 교향곡 10번은, 역사 속에서 멈춰버린 두 위대한 음악가의 창작을 되살리는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베토벤 10번 교향곡은, 오스트리아 작곡가 발터 베르초바를 비롯한 음악학자·AI 전문가들이 참여해 베토벤의 스케치, 작곡 패턴, 화성 구조를 학습시킨 AI가 3악장 스케르초와 4악장 론도를 완성했다. 슈베르트의 경우, 미국 작곡가 루카스 켄터가 중국 화웨이의 의뢰로 AI 시스템을 활용해 교향곡 8번의 남은 악장을 재현했다. 


이 공연의 청중은 ‘만약 그가 더 살았다면 이런 음악을 썼을까?’하는 상상을 현실에서 들을 수 있었다. 베토벤의 묵직하고 장엄한 스케르초, 모차르트의 감미롭고 경쾌한 네 손 협주곡, 드보르작의 스타일을 바탕으로 한 AI 창작곡 등은, 인공지능이 작곡가이자 협연자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감정 자본주의의 시대, 진심이 들린다

요즘 사람들이 콘텐츠에서 기대하는 것은 ‘날것의 감정’이다. 과거처럼 완벽하게 연출된 이미지나 꾸며진 말투는 더 이상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가공되지 않은 솔직함, 진짜 같은 순간들이 높은 몰입력을 만들어낸다. 이런 배경 속에서 성악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성악은 본래부터 인간의 감정을 극대화해 표현하는 장르다. 사랑과 애증, 구원의 희망과 절망의 나락까지, 성악은 멜로디를 넘어선 감정적 서사를 온몸으로 펼쳐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호흡과 발성을 통해 전해지는 이 ‘진심 어린 소리’는 격정적인 감정과 서사를 담아내며, 현대의 콘텐츠 생태계에서도 어필할 수 있는 강력한 요소가 된다.


대표적으로 푸치니의 <투란도트> 중 ‘Nessun Dorma’를 들어 보자. 절망과 희망의 교차를 담은 한 소절 “Vincerò!(나는 승리할 것이다)”는 가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조차, 온몸에 감정을 실어 부르는 목소리를 통해 그 진심을 느낄 수 있다. 고음도 고음이지만, 목소리 하나로도 극적인 내러티브를 전달한다는 점이 주목받는 이유다. 슈베르트의 <마왕(Erlkönig)>도 마찬가지다. 한 곡 안에서 나오는 네 명의 서로 다른 캐릭터(해설자, 아버지, 아들, 마왕)를 단 하나의 목소리로 소화하는 성악가는 그 자체로 감정의 서사를 이끌어낸다. 아버지의 불안, 아이의 공포, 마왕의 유혹이 목소리에서 만들어내는 갈등은 청중의 몰입을 이끈다. 음악적 기교가 기본인 장르임이 분명하지만, 성악은 언어의 벽이 아니라 감정 자체로 사람에게 다가간다. 무엇을 노래하든, 진심 어린 목소리는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을 만들어낸다. 바로 이 점이 오늘날 디지털의 감정 소비 시대 속에서도 성악이 여전히 흥행할 수 있는 이유다.


오페라,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서사

성악을 이야기할 때 오페라는 빠질 수 없는 주제다. 음악, 연기, 무대미술이 결합된 오페라는 극적 서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종합 예술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오페라는 “너무 길다”, “지루하다”, “내용이 어렵다”는 인식을 종종 받았다. 언어적 장벽과 복잡한 시대적 배경은 현대 관객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졌고, 길고 느린 전개는 관객의 집중력을 요구했다. 그러나 최근 오페라는 현대화된 연출과 다양한 시도로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어가며 새로운 관객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2023년 <라 보엠> 무대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전통적인 오페라 무대 연출에서 벗어나, 실감영상 배경을 통해 관객이 앉은 곳까지 무대를 확장시켰다. 이 덕분에 관객의 진입장벽을 낮추었을 뿐 아니라, 오페라를 단순 관람이 아닌 ‘경험’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시대적 배경부터 연출, 영상미, 소품과 조명까지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관객의 몰입도를 높였다. 간결한 서사로 재구성, 러닝타임 단축, 자막을 통한 적극적인 해설 등 현대적인 무대 연출은 오페라의 현대화를 전반적으로 잘 보여주었다.


디지털 플랫폼에서도 오페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유튜브와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에서는 전체 공연을 감상하기 어렵더라도, 듣기나 시청이 부담 없는 하이라이트 클립들이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카르멘>의 ‘하바네라’나 <피가로의 결혼> 서곡은 짧지만 강렬한 장면으로, 처음 오페라를 접하는 사람들을 쉽게 매료시킬 수 있다. 특히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 아리아’는 하이F로 상징되는 높은 음역과 극한의 기술적 난이도로 유명하며, 숏폼 콘텐츠에서도 자주 소비되는 장면이다. 이 곡은 소셜 미디어에서 ‘챌린지’ 형태로 인기를 끌며, 대중 문화와 결합된 사례다. 실제로 일반인들이 ‘밤의 여왕 아리아’를 본인의 스타일로 커버하거나 하이라이트를 재창조하는 영상 콘텐츠들이 꾸준히 관심을 받고 있다. 오페라는 길다는 이유로 대중에게 거리를 두었던 한계를 숏폼 문화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서서히 줄이고 있다. <라 트라비아타>와 <리골레토> 같은 작품들이 주요 장면별로 클립화되어 유통됨으로써, 이제 오페라는 청중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유연한 예술로 변화하고 있다. 동시에 이러한 방식은 현대인의 감각적 취향에 맞추어 오페라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장르’라는 본질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크로스오버, 장르를 넘는 목소리

시대가 변하며 성악은 다양한 장르와 문화로 확장되고, 대중음악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성악 발성을 대중음악에 활용하는 사례는 특히 눈에 띈다. 대중가수 김범수는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나 인정하는 가창력 있는 가수이자, 대중가요 보컬계의 교과서라고 할 만큼 발성 측면에서도 탁월한 아티스트이다. 그럼에도 롱런을 위해 더 안정적이고 풍성한 발성을 목표로 성악을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방식은 연예 매니지먼트사에서도 자주 활용되고 있다. 많은 K팝 그룹의 보컬 트레이닝 과정에서 성악 발성을 기초 훈련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성악은 소리를 강하게 내는데 목표로 삼기보다는, 신체 전체를 울림의 도구로 만들어 목소리를 풍성하고 안정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기법은 K팝 공연의 역동적인 퍼포먼스와 폭발적인 고음 처리에 매우 유용한 기반이 된다.


최근에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성악을 기반으로 한 크로스오버 장르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팬텀싱어>에서 결성된 라포엠과 포레스텔라는 성악 기반의 테크닉과 현대적인 장르를 접목하며 새로운 팬층을 이끌어냈다. 특히, 이들은 성악에서 강조하는 정제된 발성법과 고전적 서사를, 현대의 대중이 익숙한 K팝,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와 결합해 클래식 음악의 현대화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들이 선보이는 창의적이고 감각적인 무대 연출은 기존의 클래식 공연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신선함을 제공하며 아이돌 못지않은 팬덤 문화를 구축하고 있다. 음악 활동 외적으로도, 팬미팅을 진행하거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팬과 교류하며 청중과의 심리적 연결을 강화하고 있다. 굿즈 제작, 팬아트 공유, 팬들이 직접 제작한 커버 콘텐츠 등 다양한 콘텐츠가 등장하면서 동참하는 팬들도 성악의 기술적 요소와 매력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성악을 대중적 영역으로 점차 확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성악은 왜 어려웠을까?


클래식 성악이 오늘날의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기 어려웠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언어의 장벽이 있다. 대부분의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와 가곡은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라틴어 등 한국인이 잘 사용하지 않는 언어로 되어 있다. 자막이나 번역이 제공되더라도, 언어 특유의 억양과 뉘앙스, 단어 안에 담긴 문화적 맥락을 한 번에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둘째, 오페라나 독창회가 주는 격식의 이미지다. 클럽이나 대형 공연장에서 열리는 팝 콘서트와 달리 성악은 단정한 옷차림의 관람 예절이 요구되며, 비교적 고가의 티켓과 격식을 동반하는 형식으로 인해 심리적 거리감이 생긴다. 기침을 언제 해야 할지, 박수는 언제 쳐야 하는지 등 배우지 않으면 모르는 이런 문화는 성악을 ‘엘리트 문화’로 여기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셋째, 발성적으로 성악은 현대 대중음악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훈련된 목소리여서 낯설다. 성악은 음성이 악기를 압도하거나 공연장 전체를 채울 수 있을 만큼 울림을 크고 풍부하게 만드는 발성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가사를 알아듣기 어렵거나 지나치게 격정적으로 들리는 경우가 있어 종종 어색하게 느껴진다. 이는 가사 전달을 우선으로 하거나 마이크와 음향장비를 사용해 ‘말하는 듯한 발성’을 하는 대중음악과는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이 ‘어려움’이 성악의 본질적 매력이기도 하다. 아무리 낯선 언어라도 성악가가 목소리를 통해 전하는 감정은 청중에게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그 언어를 몰라도 감정의 고조가 느껴지고, 몸 전체를 울려 나오는 소리는 별다른 설명 없이도 드라마가 된다. 특히,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성악은 그 효과가 배가 된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100명이 넘는 악단 위로 우뚝 솟고, 소리가 공연장의 천장과 벽을 울리는 순간, 관객들은 귀로 소리를 듣는 것을 넘어 진동과 울림을 몸 전체로 경험한다. 누구나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소리만으로 그려지는 드라마. 바로 이 점이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 생태계 안에서 성악이 재조명받고 있는 이유다.






감정 자본주의의 시대, 진심이 들린다


요즘 사람들이 콘텐츠에서 기대하는 것은 ‘날것의 감정’이다. 과거처럼 완벽하게 연출된 이미지나 꾸며진 말투는 더 이상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가공되지 않은 솔직함, 진짜 같은 순간들이 높은 몰입력을 만들어낸다. 이런 배경 속에서 성악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성악은 본래부터 인간의 감정을 극대화해 표현하는 장르다. 사랑과 애증, 구원의 희망과 절망의 나락까지, 성악은 멜로디를 넘어선 감정적 서사를 온몸으로 펼쳐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호흡과 발성을 통해 전해지는 이 ‘진심 어린 소리’는 격정적인 감정과 서사를 담아내며, 현대의 콘텐츠 생태계에서도 어필할 수 있는 강력한 요소가 된다.


대표적으로 푸치니의 <투란도트> 중 ‘Nessun Dorma’를 들어 보자. 절망과 희망의 교차를 담은 한 소절 “Vincerò!(나는 승리할 것이다)”는 가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조차, 온몸에 감정을 실어 부르는 목소리를 통해 그 진심을 느낄 수 있다. 고음도 고음이지만, 목소리 하나로도 극적인 내러티브를 전달한다는 점이 주목받는 이유다. 슈베르트의 <마왕(Erlkönig)>도 마찬가지다. 한 곡 안에서 나오는 네 명의 서로 다른 캐릭터(해설자, 아버지, 아들, 마왕)를 단 하나의 목소리로 소화하는 성악가는 그 자체로 감정의 서사를 이끌어낸다. 아버지의 불안, 아이의 공포, 마왕의 유혹이 목소리에서 만들어내는 갈등은 청중의 몰입을 이끈다. 음악적 기교가 기본인 장르임이 분명하지만, 성악은 언어의 벽이 아니라 감정 자체로 사람에게 다가간다. 무엇을 노래하든, 진심 어린 목소리는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을 만들어낸다. 바로 이 점이 오늘날 디지털의 감정 소비 시대 속에서도 성악이 여전히 흥행할 수 있는 이유다.




지금 우리는 성악의 부활을 목격하고 있다. 더는 오페라 극장과 소수의 클래식 애호가들만을 위한 고전 장르로 머물지 않는다. 성악은 이제 웨딩홀의 축가로, 대형 콘서트홀의 감동으로, 거리 공연의 친근한 음악으로, 광고와 드라마 OST에서 순간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일상의 소리로 스며들고 있다. 사용되는 공간과 맥락은 달라도, 그 본질은 동일하다. 성악은 목소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울림과 연결을 제공한다. MZ세대는 성악 영상을 2배속 재생으로 빠르게 감상하기도 하고, 숏폼 배경음악으로 등장하는 성악곡에서 새로운 영감을 찾기도 한다. 또, 드물게 찾는 전통적인 콘서트에서, 혹은 온라인 스트리밍으로도 감상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와 성악의 웅장한 앙상블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성악이 가진 근본적인 감동을 경험한다.




디지털화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소리의 본질을 갈망한다. 자극적이고 반복적인 음향 속에 묻혀, 점점 더 사람의 목소리, 감정의 떨림, 자연스러운 울림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 지금,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진솔한 소리를 원하고 있다. 성악은 결국 ‘사람의 소리’다. 가공되지 않은 목소리일수록 더 크고 진솔하게 다가온다. 바로 그것이 이 시대에도 성악이 감동을 주는 이유가 아닐까?


오페라,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서사


성악을 이야기할 때 오페라는 빠질 수 없는 주제다. 음악, 연기, 무대미술이 결합된 오페라는 극적 서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종합 예술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오페라는 “너무 길다”, “지루하다”, “내용이 어렵다”는 인식을 종종 받았다. 언어적 장벽과 복잡한 시대적 배경은 현대 관객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졌고, 길고 느린 전개는 관객의 집중력을 요구했다. 그러나 최근 오페라는 현대화된 연출과 다양한 시도로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어가며 새로운 관객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2023년 <라 보엠> 무대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전통적인 오페라 무대 연출에서 벗어나, 실감영상 배경을 통해 관객이 앉은 곳까지 무대를 확장시켰다. 이 덕분에 관객의 진입장벽을 낮추었을 뿐 아니라, 오페라를 단순 관람이 아닌 ‘경험’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시대적 배경부터 연출, 영상미, 소품과 조명까지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관객의 몰입도를 높였다. 간결한 서사로 재구성, 러닝타임 단축, 자막을 통한 적극적인 해설 등 현대적인 무대 연출은 오페라의 현대화를 전반적으로 잘 보여주었다.


디지털 플랫폼에서도 오페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유튜브와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에서는 전체 공연을 감상하기 어렵더라도, 듣기나 시청이 부담 없는 하이라이트 클립들이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카르멘>의 ‘하바네라’나 <피가로의 결혼> 서곡은 짧지만 강렬한 장면으로, 처음 오페라를 접하는 사람들을 쉽게 매료시킬 수 있다. 특히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 아리아’는 하이F로 상징되는 높은 음역과 극한의 기술적 난이도로 유명하며, 숏폼 콘텐츠에서도 자주 소비되는 장면이다. 이 곡은 소셜 미디어에서 ‘챌린지’ 형태로 인기를 끌며, 대중 문화와 결합된 사례다. 실제로 일반인들이 ‘밤의 여왕 아리아’를 본인의 스타일로 커버하거나 하이라이트를 재창조하는 영상 콘텐츠들이 꾸준히 관심을 받고 있다. 오페라는 길다는 이유로 대중에게 거리를 두었던 한계를 숏폼 문화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서서히 줄이고 있다. <라 트라비아타>와 <리골레토> 같은 작품들이 주요 장면별로 클립화되어 유통됨으로써, 이제 오페라는 청중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유연한 예술로 변화하고 있다. 동시에 이러한 방식은 현대인의 감각적 취향에 맞추어 오페라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장르’라는 본질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크로스오버, 장르를 넘는 목소리


시대가 변하며 성악은 다양한 장르와 문화로 확장되고, 대중음악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성악 발성을 대중음악에 활용하는 사례는 특히 눈에 띈다. 대중가수 김범수는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나 인정하는 가창력 있는 가수이자, 대중가요 보컬계의 교과서라고 할 만큼 발성 측면에서도 탁월한 아티스트이다. 그럼에도 롱런을 위해 더 안정적이고 풍성한 발성을 목표로 성악을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방식은 연예 매니지먼트사에서도 자주 활용되고 있다. 많은 K팝 그룹의 보컬 트레이닝 과정에서 성악 발성을 기초 훈련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성악은 소리를 강하게 내는데 목표로 삼기보다는, 신체 전체를 울림의 도구로 만들어 목소리를 풍성하고 안정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기법은 K팝 공연의 역동적인 퍼포먼스와 폭발적인 고음 처리에 매우 유용한 기반이 된다.


최근에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성악을 기반으로 한 크로스오버 장르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팬텀싱어>에서 결성된 라포엠과 포레스텔라는 성악 기반의 테크닉과 현대적인 장르를 접목하며 새로운 팬층을 이끌어냈다. 특히, 이들은 성악에서 강조하는 정제된 발성법과 고전적 서사를, 현대의 대중이 익숙한 K팝,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와 결합해 클래식 음악의 현대화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들이 선보이는 창의적이고 감각적인 무대 연출은 기존의 클래식 공연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신선함을 제공하며 아이돌 못지않은 팬덤 문화를 구축하고 있다. 음악 활동 외적으로도, 팬미팅을 진행하거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팬과 교류하며 청중과의 심리적 연결을 강화하고 있다. 굿즈 제작, 팬아트 공유, 팬들이 직접 제작한 커버 콘텐츠 등 다양한 콘텐츠가 등장하면서 동참하는 팬들도 성악의 기술적 요소와 매력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성악을 대중적 영역으로 점차 확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성악의 부활을 목격하고 있다. 더는 오페라 극장과 소수의 클래식 애호가들만을 위한 고전 장르로 머물지 않는다. 성악은 이제 웨딩홀의 축가로, 대형 콘서트홀의 감동으로, 거리 공연의 친근한 음악으로, 광고와 드라마 OST에서 순간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일상의 소리로 스며들고 있다. 사용되는 공간과 맥락은 달라도, 그 본질은 동일하다. 성악은 목소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울림과 연결을 제공한다. MZ세대는 성악 영상을 2배속 재생으로 빠르게 감상하기도 하고, 숏폼 배경음악으로 등장하는 성악곡에서 새로운 영감을 찾기도 한다. 또, 드물게 찾는 전통적인 콘서트에서, 혹은 온라인 스트리밍으로도 감상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와 성악의 웅장한 앙상블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성악이 가진 근본적인 감동을 경험한다.


디지털화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소리의 본질을 갈망한다. 자극적이고 반복적인 음향 속에 묻혀, 점점 더 사람의 목소리, 감정의 떨림, 자연스러운 울림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 지금,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진솔한 소리를 원하고 있다. 성악은 결국 ‘사람의 소리’다. 가공되지 않은 목소리일수록 더 크고 진솔하게 다가온다. 바로 그것이 이 시대에도 성악이 감동을 주는 이유가 아닐까?